출처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Elector_Count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Aldebrad_Ludenhof



젊은이, 언젠가 자네는 호흘란트의 선제후로써 자네 부친을 계승하기에, 우리의 광대한 영토의 군사적, 정치적 구조를 배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네. 이곳 헤르기그(Hergig)의 궁정에서, 자네는 호흘란트 지방을 다스릴테지. 이 지도에서 국경을 볼 수 있을걸세. 언제나 명심하게, 자네의 첫 번째 의무는 백성들을 다스리고 지키는 것이야. 게다가 자네는 이미 자네의 정식 직함이 선제후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이미 알고 있어, 더욱 거대한 책무와 함께 하는 직함 말일세. 자네는 제국 의회에 참석할거야, 다른 열 넷의 선제후들과 함께.


— 콘라트 루덴호프(Konrad Ludenhof), 알데브란트 루덴호프의 아들에게 지도교사 뉠른의 에라스무스(Erasmus of Nuln)의 훈시에서 발췌.


정식 직함으로는, 선제후 알데브란트 루덴호프, 호흘란트(Hochland)의 대남작(Grand Baron), 탈라벡(Talabec) 유역의 치안관(Marshal), 성지들의 수호자, 헤르기그의 남작인 알데브란트 루덴호프는 호흘란트의 현 선제후입니다. 비록 호흘란트가 특별히 크거나 중요한 지방은 아니지만, 이곳의 선제후는 제국의 가장 용맹한 지도자 중 하나입니다. 알데브란트는 키가 매우 크고 호리호리하지만 완력이 엄청나고 단련되어 있어, 전투에서 더 크고 육중한 상대와 겨룰 수 있습니다. 그는 사냥, 특히 매사냥에 대해서 끊임없는 열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알데브란트의 궁은 수도 헤르기그의 바깥 쪽에 위치해있어, 주 사냥터에 둘려쌓여 있습니다. 그는 엄청난 수의 매 새장을 차지하는 자신의 사냥용 새 소장물에 대해 특히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종종 궁 안에 풀어놓기도 하기에, 모든 방 안에는 횃대에 걸터앉은 맹금류가 적어도 한 마리는 있습니다. 이 제후는 전투에 나설 때도 자신의 팔에 매를 한 마리 얹고 갑니다. 알데브란트에게는 제국 작위를 이을 것이 확실한 후계자인 아들, 콘라트 루덴호프가 있으며 현재 뉠른의 에라스무스 지도 아래에 있습니다.


2516, 알데브란트 루덴호프의 아들은 지독한 질병에 걸리게 되었고 흉물스러운 카오스(Chaos) 돌연변이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출처 :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Boris_Todbringer



내 반평생과 한 눈을 통째로 바쳐 이것들과 싸워왔다. 흉폭하고 강력한 짐승들이나, 더 무서운 건 몇몇 놈들은 야수의 교활함과 카오스(Chaos)에서 생겨난 야만성에다가 인간의 지성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허나 가장 지독한 것은 저들 중 몇몇이 인간이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겉보기에 평범하고 신실한 인간이 변장한 돌연변이였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실이다. 그들은 비스트맨의 첩자로 행동하고 그래, 때로는 암살자로도 그러하지.


—보리스 토드브링어, 미덴하임(Midenheim)의 선제후


정식 직함으로는, 선제후 보리스 토드브링어, 미덴하임의 백작(Graf), 미덴란트(Middenland)의 대공(Grand Duke), 카로부르크(Carroburg)의 군주(Prince), 드락발트(Drakwald)의 수호자, 중간 산맥(the Middle Mountains)의 관리자, 울릭(Ulric)의 총아로 알려진 보리스 토드브링어는 미덴란트의 선제후입니다. 보리스 백작은 대단한 전사이자 탁월한 정치가이며, 수십년간 자신의 가문인 토드브링어 가의 수장이었습니다. 보리스 백작의 말년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속삭여대는 소문으로 인해 근심으로 짓눌렸습니다. 그의 드락발트 숲 비스트맨과의 전투, 특히 그가 눈을 취했고 한 해가 지나, 그 댓가로 자신의 오른쪽 눈을 잃게 한 사악한 짐승, 카즈라크(Khazrak)와의 전투는 끝없는 투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문이 사실이라면, 보리스 토드브링어는 실로 심지가 굳은 자인데, 겉보기로도 그는 언제나 혈기왕성한 채이고, 무시무시한 전사이며 지도자입니다. 그는 자주 미덴란트 군대를 직접 이끌고, 자신의 룬팽(Runefang)으로 적들을 쳐부수며, 자신의 군사들을 승리로 이끕니다. 부친의 서거 이후, 카를 프란츠(Karl Franz)가 황제로 선출되자, 오직 미덴란트의 보리스 토드브링어만이 그에 맞섰습니다. 울릭의 고위 사제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카를 프란츠의 제후들 중에서 가장 충성되고 힘이 넘치는 자임을 증명했습니다.



토드브링어 가문 계보


역사 (History)


대 신전의 불꽃이 남아있는 한, 미덴하임과 미덴란트는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


—보리스 토드브링어, 미덴하임의 선제후


보리스 토드브링어는 상당히 일찍 결혼했으며, 그의 첫 부인, 마리아 폰 리히트호펜(Maria von Richthofen)은 보리스가 자기 작위의 후계자로 명한 스테판을 낳고 한 해 뒤에 죽었습니다. 보리스는 시녀에게서 얻은 또다른 아들, 하인리히(Heinrich)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간에는 하인리히가 백작과 마리아의 혼인 전날 밤에 잉태되었다는 불확실한 소문이 있습니다.


스테판 남작은 출생 하루 뒤에 백작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자라자 침흘리고 중풍에 걸린 장애인이며, 극도의 폭력성과 광증에 시달린다는 사실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틸레아인(Tilean) 의사 루이지 파바로티가 스테판의 전속 의사로 임명되면서 호전되었습니다. 스테판과는 완전히 반대로, 백작의 장남인 하인리히 토드브링어 남작은 상당한 지적 재능과 육체적 기량을 타고났습니다. 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생아로써의 출생은 부친의 미덴하임 백작직을 물려받기에는 부적합했습니다.


47의 나이에 백작은 또 다른 부인, 노르들란트(Nordland)의 남작의 여식, 아니카-엘리제 닉세(Anika-Elise Nikse)를 맞이했습니다. 불행히도, 혼인 생활 중에 후사는 없었으며, 아니카-엘리제는 결혼하고 10년 뒤에 죽습니다. 백작은 아이를 하나 더 얻게 되는데, 두 번째 혼인에 앞서 시녀에게서 낳은 카타리나(Katarina)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백작은 만사에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작의 비통함은 서서히 우울감에서 사실상의 정신박약으로 악화되어 갔기에, 그는 대다수의 사안에 대해서는 그의 조언자들이 자신을 대신하도록 합니다.


그의 퇴세를 배로 비극으로 만드는 것은, 전 시녀와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나온 장남과, 첫 아내로부터 나온 차남인 그의 두 아들들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후자는 태어난 바로 그 날에 자기 부친 작위의 후계자로 임명된스테판 토드브링어 남작(보리스의 첫 부인은 그를 낳다가 죽었습니다)입니다. 이는 스테판이 자라면서 가엾은 병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가장 불행한 실수였음이 드러났습니다. 중풍에 걸리고 정신박약에다가, 침흘리는 지진아인 그를 돌보는 것을 배로 어렵고 까다롭게 하는 건, 극도의 불안 증세와 수시로 터져 나오는 자해 시도와 타인을 향한 폭력 때문이었습니다.


장남 하인리히 토드브링어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상당한 지적 재능과 육체적 기량이 두드러지는 자였습니다. 몇 해 동안, 하인리히는 자신의 부친에게서 외교 임무를 맡았지만, 이 재능있는 자는 보리스 백작의 쇠약함으로 인해 절망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는 작위의 후계자가 아닌데다가 자신의 위에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쇠락한 친족이 둘이나 놓여있기에, 자신은 백작의 직무를 맡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이 상황을 구제하기 위한 절박한 시도이자 스테판의 형편을 맞추기 위해, 유명한 미라글리아노인(Miraglianese) 의사를 도시로 들여왔습니다. 그곳에 있는 지 몇 주 되지도 않았지만, 루이지 파바로티는 그의 무지막지한 식욕에서 비롯된 도시 전체에 퍼진 악명을 얻었고, 틸레아 출생에도 불구하고 의사 양반”(“Herr Doktor")으로 널리 알려집니다. 조련사와도 같은 이 자는 스테판 남자의 증세를 눈에 띄게 안정시킵니다. 루이지가 주변에 있을 때면 확실히, 스테판은 두드러지게 유순했습니다. 하지만 떨어대는 스테판이 자기 아버지의 역할을 맡을 위치에 있을 거란 희망은 거의 없을지라도, 보리스 백작은 가령 하인리히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승계의 칙령을 뒤바꿀 의향을 내비추지는 않았습니다.


스테판과 하인리히는 사교도들의 음모의 결과로 인해 몇 해 뒤에 죽고 맙니다. 이로 인해, 올드 월드(Old World) 전역의 젊은 귀족들 태반에게서, 비록 공식적으로 직함을 얻진 못했지만, 미덴하임인들에게 공주라고 불리는 보리스의 여식과의 혼인 승낙을 받기 위한 엄청난 외교 활동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그 어떠한 구혼자도 적절하다고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개요 (Overview)


밤 중에 장부 속 비수가 아닌, 내 손의 굳건한 강철과 튼튼한 떡갈나무로 맞설 적을 데려오라


—보리스 토드브링어, 미덴하임의 선제후


보리스 토드브링어 백작과 토드브링어 가문은 가장 돋보이는 계보를 지닌 가문입니다. 그들은 운문과 산문 그리고 노래 속에서 여전히 기억되는 시절, 실질적인 제국의 구세주인 경건한 자, 마그누스(Magnus the Pious) 황제의 형제, 군타르 폰 빌트호펜(Gunthar von Bildhofen)의 후예이며 폰 빌트호펜 가문의 먼 친족들입니다. 보리스 백작은 자신의 선조들이 발전시킨 반민주적인(semi-democratic) 정부의 맥락 속에서 통치해왔습니다. 엄밀히 보면, 그가 도시 내의 모든 법안을 제정하지만, 그는 수많은 조언가들을 두고 있으며 이익 집단들 (상인, 장인, 종교지도자 및 기타)은 다양한 공민위원회(Bürgerlich Komissionen) (시 의회)를 통해서, 어떤 경우에는 직접 그에게 제청과 진정(陳情)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치에 대한 백작의 개화된 접근법은 지금 중요한 결과 하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덴하임은 어쩌면, 놀랍게도 다소 자유로운 장소라는 점입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관용적인 편이며, 심지어는 신용이 가는 자들이고 도시의 일부가 빈곤할지언정 추잡하다고는 할 수 없어 미덴하임은 많은 제국 도시들 중에서도 살기 좋은 곳입니다. 요새 도시에서 이러한 자유주의란 다소 희한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분명 토드브링어 가문이 여러 세월에 걸쳐 입법과 법을 집행할 때, 백성들에게 귀기울이기를 힘쓴 사실 덕택입니다. 수많은 학식있는 사람들과 그럼에도 종족들간에 상대적으로 서로 조화로운 관계 역시 미덴하임의 자유주의를 영속시킵니다.


제국과의 관계 (Relations with the Empire)


카를 프란츠 1세가 알트도르프(Altdorf)에 있는 자신의 권좌에서 제국 전체에 절대적인 지배권을 유지한다고는 하지만, 다른 선제후들과 마찬가지로 보리스 백작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권력의 한계는 오직 주변의 선제후들이 내버려두는 지점까지 입니다. 물론 황제의 선언 하에 전시가 되면 (선제후가 그 대의가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는 가정 하에), 백작은 황제가 명할 군대를 지원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도, 보리스가 전쟁에 나서고 싶어하지 않고, 다른 선제후들이 그에게 떼를 지어 맞서지 않을거라고 (또는 그러지도 못할 거라는) 믿을 명확한 이유가 있다면, 황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현재로써, 알트도르프와 미덴하임 궁정 사이의 관계는 다소 긴장되어 있습니다. 보리스 백작은 돌연변이 따위는 없다는 최근 황제의 선언이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게다가 그의 고문(Chancellor)에게 저 나이든 멍청이가 드디어 돌아버렸어!”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혀 도를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물론 보리스 백작이 울릭의 신봉자라는 사실이 (비록 이를 내세우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황제를 향한 그의 태도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는 카를 프란츠가 지그마 교단 대학자(the Grand Theogonist of the Cult of Sigmar)의 꼭두각시와 다를 거 없다고 의심합니다. 그렇다면 고위 대의원 베르너 스톨츠(High Capitular Werner Stolz)(미덴하임의 지그마 고위 사제)가 백작의 궁정에서 환영받는 방문객은 못된다는 점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보리스 백작은 노르들란트의 소지방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인구가 드문드문 모인 지역과의 인연은 2368, 브룬힐데 토드브링어(Brunhilde Todbringer)가 루드비히 닉세(Ludwig Nikse)와 혼인한 때로부터 이어졌습니다. 그 때부터, 이 관계는 2457년에 보리스의 부친과 비르깃 닉세(Birgit Nikse)와의 혼인, 2502년에 보리스 자신이 아니카-엘리제 닉세 (현 남작의 여식)를 자신의 둘째 부인으로 맞이하면서 더욱 곤고하게 되었습니다. 노르들란트는 미덴하임에게 자신의 안보와 남쪽 그리고 서쪽의 교역관계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으며 그 답례로 우드 엘프(Wood Elf)-인간 사이 교역의 주 공급처와 정치적 지원 그리고 때때로 궁병 연대를 지원합니다.


직속 조언자 (Personal Advisors)


미덴하임 하루하루의 운영을 보조하기 위해, 지난 백작들은 종종 온갖 조언자들에게 둘러쌓였습니다. 보리스 백작도 예외는 아닙니다. 궁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무처는 바로 고문(“안됩니다!”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과 보리스가 내리는 결정의 정치적 파문에 대해 백작에게 조언하는 대법관(the Law Lords)(세 명의 매우 진지하고 거만한 전문가)이 있는 곳입니다. 마법사와 연금술사 길드(The Wizards and Alchemists Guild)의 고위 마법사와 상비군과 도시 경비대를 책임지는 세 명의 미덴마샬(Midden Marshalls)이 기타 조언자에 포함됩니다.


종교 (Religion)


보리스 백작은 울릭 숭배자인데, 그의 조상인 군타르가 경건한 자, 마그누스의 서거 이후 황제가 되지 못한 것에 지그마 교단의 대학자 결코 적지 않은 책임이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반면 미덴하임에 있는 지그마 교단 사제장 베르터 스톨츠는 현 대학자 및 탈라브하임(Talabheim)과 뉠른(Nuln)의 지그마 교단 대봉독자(Arch Lector)와 친밀한 관계입니다(모두가 선출권자입니다). 이 셋은 적어도 한번은 매년 스톨츠를 방문하기로 약조했고, 교단들 간의 긴장감은 겉보기에 격식있고 차분한 표면 아래에서도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막강한 본거지인 이곳에서도 스톨츠는 아르-울릭(Ar-Ulric)과 그의 교단을 속여넘길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무구 (Wargear)


제국의 선제후로써 보리스는 자신이라는 사람의 비중에 걸맞는 강력한 마법 도구와 갑주 그리고 무기를 고를 수 있습니다. 그는 드워프가 주조한 전신갑주와 방패를 듭니다. 그는 갑주 군마를 타고 미치광이 알라릭(Alaric the Mad)이 지그마를 위해 만든 고대의 마법 룬팽 중 하나로 무장합니다. 또한 이 선제후는 사슬에 걸린 울릭의 부적을 목에 겁니다. 이는 미덴란트 제후의 고대 가보이며, 마법적인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상처를 치료합니다.



출처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Elector_Count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Marius_Leitdorf



지그마시여 보우하소서, 하지만 난 주변의 선제후들보단 드워프들에게 되려 믿음이 가더란 말이지


—아펠란트의 제후,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Count Marius Leitdorf of Averland)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는 제국에서 가장 위대한 전사이자, 그 자신의 광기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는 2520년 제 3차 검은 불꽃 고갯길 전투(the Third Battle of Black Fire Pass)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로 세상을 떠났기에, 현재 아펠란트의 선제후 자리를 두고서 다툼이 있습니다.


아펠란트의 미치광이 제후로 가장 악명이 드높은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는 지금은 사망한, 아펠란트의 선제후이며 미쳤거나, 제국의 군대에서 가장 용맹한 장군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숲과 벌떼 그리고 반쯤 상상에서 나온 물고기인간과 전쟁을 벌였다곤 못할 것이기에,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가 미치광이 제후로 알려진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리우스를 그의 기이하고 이색적인 천성, 가령 한바탕 분노의 고함을 지르거나, 우울감에 시달릴 때, 그리고 궁정에서의 변덕스러운 행동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가 다른 조언자에게만큼, 자신의 군마, 데이지 쿠르트 폰 헬보링 2(Daisy Kurt von Helboring II)에게 조언을 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실은, 귀족가의 부인들과 여식들에게 행한 충격적인 행동과 불한당 같은 불손함은 다른 제후들이 자신의 궁정으로 그를 환영할 일도 거의 없게 만들었습니다. 라이트도르프의 가장 통렬한 비난 중 하나는 쿠르트 헬보르그(Kurt Helborg)에게였는데, 미치광이 제후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를 형편없는 콧수염을 가졌고, 그보다 더 형편없는 치아 위생, 그리고 트롤(Troll)과 견줄만한 끔찍한 유머감각을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마지막 부분에서만큼은, 그 판단은 맞았습니다만, 이때부터 이 둘 사이의 반목은 가히 전설적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그의 태도의독특함과 의복의 기이함에서 비롯된 라이트도르프의 명성이 그에게 지독한 손해를 끼칠지언정, 그는 예리한 판단력을 지녔습니다. 그는 정말로 재주가 뛰어난 시인이자 몇몇 관습의 고안자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라이트도르프는 특출난 검사이자 상당한 재주와 솜씨로 전선에서 군대를 이끄는 군사 전술가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몇몇의 대단한 승전은 그의 광적인 용맹과 묘한 통찰력 덕분이기도 했으며, 카를 프란츠(Karl Franz)는 라이트도르프를 자신의 가장 신뢰할만한 동맹으로 여겼습니다.


역사 (History)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는 이른 치세기에 카를 프란츠에게 오랫동안 문제를 끼쳐왔습니다. 수 년간 그는 다른 제후들에게 도전했고, 상상의 적들을 쫓아 불필요한 군사 원정을 이끌었으며, 주변에 불안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제국력 2502년의 악명높은 하플링(Halfling) 반란의 무자비한 진압 이후로, 카를 프란츠는 자신의 우중충한 대전사인 루드비히 슈바르츠헬름(Ludwig Schwarzhelm)을 파견해 괴짜 선제후와 견고한 협상을 맺고 오라고 했습니다.


음울한 슈바르츠헬름이 받은 명령은 단순했습니다. 그는 라이트도르프의 악명높도록 예측불가한 행동이 더 이상 제국을 위험에 빠뜨리지 못하도록 확실히 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대전사를 통한 카를 프란츠, 자신의 명확한 지시로, 마리우스는 자신의 가장 지나친 과도함을 누그러뜨릴 새 조언자들을 임명했고, 황제는 괴짜 제후에게 호감을 가졌으며, 그를 제국의 용맹하고도 정신나간 전사로 보았습니다.


미치광이 제후의 죽음 (The Death of the Mad Count)


2520년에, 황제의 충직한 동맹으로써 습곡에 돌아온 라이트도르프는 카를 프란츠에게 전언을 보내어, 그린스킨 전사들의 대규모 무리가 다시금 검은 불꽃 고갯길로 진군하고 있으며, 아펠란트의 지방군만으로는 저들을 몰아내기에 역부족임을 알렸습니다. 카를 프란츠는 막강한 스팀 탱크(Steam Tanks)의 세 대가 뒤따르는 라이클란트(Reikland)와 알트도르프(Altdorf) 도시에서 총동원한 군사력으로 답했습니다. 그러한 군세를 휘하에 두고서, 황제는 라이트도르프의 포위된 군대를 지원했고 오크(Orcs)의 물결을 막아내었습니다.


하지만, 합쳐낸 군세에도 불구하고 검은 불꽃 고갯길로 향해 다가왔던 그린스킨 군단은, 마치 2,500여년전 지그마 헬든해머(Sigmar Heldenhammer)의 시기만큼이나 절망적으로 거대했습니다. 너무도 결말이 뻔한 전투 중에서, 미치광이 제후와 그의 아펠란트인 그레이트소드(Averlander Greatswords) 편대는 그린스킨 전사들의 바다에 맞서는 섬처럼 버티고 섰습니다. 모든 희망을 등진 채, 미치광이 제후는 오크 워보스(Orc Warboss)와 싸웠고, 패배했으며 생명잃은 몸뚱아리는 대지에 내쳐졌습니다. 카를 프란츠의 분투로 전투는 이겼을지라도, 아펠란트의 미치광이 제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무장 (Wargear)


원천의 파멸 (Mother's Ruin) 아펠란트의 선제후로써, 마리우스는 자신의 막강한 룬팽을 휘두릅니다. 원천의 파멸와 긴 단검을 같이 쥔 그는, 숙련된 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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