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Karl_Franz




본명 : 카를-프란츠 홀스비히 슐리스타인 (Karl-Franz Holswig Schliestein)


치세 : 2502현재


전임자 : 루이트폴트 1 (Luitpold I)


후계자 : 루이트폴트 2 (Luitpold II)


귀족가 : 홀스비히 슐리스타인 가문(House Holswig Schliestein)


권좌(Seat of Power) : 알트도르프 (Altdorf)


우리가 죽거든, 검을 움켜쥐고 죽을 것이니, 전사로써 그보다 훌륭한 죽음을 없을 터이다. 우리는 고대의 영웅들처럼 지그마(Sigmar)의 연회자리에 앉고 세상 끝날 까지 우리의 이름은 사람들의 가락 속에서 기억되리라!”


—병사들을 향한 카를 프란츠의 연설, 3차 검은 불꽃 고갯길 전투(the Third Battle of Black Fire Pass) 중


카를-프란츠 또는 카를 프란츠 1, 제국의 수호자, 어둠에 맞서는 자, 황제이자 황제들의 자손, 라이클란트(Reikland)의 선제후이자 알트도르프 대공인 카를 프란츠는 인류 제국의 현 황제이고, 라이클란트의 선제후, 알트도르프 대공이며 아마 올드 월드(Old World) 전체에서 수 세기 만에 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정치가이자 제국의 장군일 겁니다. 제국력 2502년에, 부친의 발자취를 따라 제국의 왕좌에 선출에 카를 프란츠는 예술과 과학의 후원자, 군사 혁신가이자 용맹한 장군으로 칭송받았습니다.


신민들을 향한 그의 끝없는 노력 덕분에, 제국은 그의 치세기에 전에 더없이 부흥했습니다. 알트도르프의 제국 공학 대학(Imperial School of Engineers)은 성장했고, 마법 대학들(the Colleges of Magic)은 번성했으며, 그의 군대는 승리에 승리를 더하여 진군했습니다. 이 황제는 갈 마라즈 (Ghal Maraz), 이천년전 드워프(Dwarf) 왕 쿠르간 아이언비어드(Kurgan Ironbeard/무쇠수염 쿠르간)가 지그마 당신에게 건네주었던 전설의 마법 전투 망치를 들거나, 또는 자신의 룬팽(Runefang) 검을 들고 많은 세월 동안 자신을 태운 그리폰, 데스클로(Deathclaw/죽음발톱)에 올라타며, 곁에 부사령관이자 사적으로는 친구인 라익스마샬 쿠르트 헬보르그(Reiksmarshal Kurt Helborg)를 두고서, 종종 자신의 부대를 손수 지휘합니다.



데스클로와 함께 비스트맨(Beastmen)과 싸우는 카를 프란츠


역사 (History)


그대들의 제국을 위하여 죽지 않겠는가? 그대들의 가족을 위하여 싸우지 않겠는가? , 죽음의 아가리 속으로 나아가, 울부짖어라! 오늘, 그대들은 역사 속에서 불후로 살아갈 것이니라.


—카를 프란츠 황제


제국력 2502년에 제국의 옥좌에 오른 후로, 카를 프란츠는 자신이 사랑하는 신민들에게 자신은 결코 퇴폐하거나 탐욕스러운 인간이 아닌, 그의 백성들을 가장 암울한 시기에서 이끌어 줄 사람임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황제는 오직 군사력만이 새 황제로써의 입지를 견고히 다질 수 있다고 결정했고, 그리하여 적의 위협이 도사리는 황무지를 정리해버릴 군사 원정을 시작했습니다. 제국력 2301년의 카오스 대전쟁(Great War Against Chaos) 이후, 비스트맨과 카오스 사교들(Chaos cults)의 숫자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늘어만 갔습니다. 황제의 조언가들은 그에게 북쪽에서 마법의 바람(the Winds of Magic)이 다시금 강하게 불어오고 세상을 전쟁으로 삼켜버릴 무시무시한 폭풍의 암울한 징조가 많이 있다고 일렀습니다. 수 년, 또는 수 십년이 걸리겠지만, 카오스의 군세는 카오스 황무지(Chaos Wastes)의 확장과 암흑 신들(Dark Gods)의 부름에 이끌려 끝끝내 돌아올 것입니다.


이는 해안가와 북부 국경을 따라 북방(Norse)의 약탈이 꾸준히 늘어가고 점차 대담해지며 나날이 수가 불어나서, 노르들란트(Nordland) 지방의 많은 촌락과 해안가를 따라 있는 어촌에 공포와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그에 응하여, 카를 프란츠가 황제로써 처음 취한 행동은, 거대한 제국군의 선두에 서서 북쪽으로 진군하여 선제후 테오데릭 가우저(Theoderic Gausser)의 군대를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장군들과 조언가들 중 그 누구도 북방이 추후 어디를 언제 습격할지 예측할 방도가 없었기에, 그는 각 구성원들이 천상을 관찰하여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강력한 천상 마법사들(Celestial Wizards) 편성단에 의지하여 그의 계획을 도우도록 했습니다.


다음 대규모 약탈단이 노르들란트의 북쪽 해변에 당도했을 때, 게걸스러운 카오스 약탈자들(Chaos Marauders)은 제국군 전열에서 날린 탄환과 석궁 화살의 일제사격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북방인(Norsemen)이 신중하게 감춰둔 롱쉽(Longship)은 제국의 총격과 대포 포대의 무시무시한 포화에 가라앉았고, 북방인들은 어디에도 달아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백의 약탈자들이 싸움도 못해보고 죽어나갔고 시체는 자기들의 육중한 배와 함께 바다 밑바닥으로 끌려갔으며, 해안가에 어떻게든 도달한 이들은 검사와 창병 그리고 할버디어의 규율잡힌 전열을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습격자들은 마지막까지 학살당했으며, 북방의 마지막이자 가장 전투로 다져진 전사들의 방패벽을 향한 돌격은 황제 자신이 직접 이끌었습니다.


자신이 선출된 때로부터, 카를 프란츠는 승리에 승리를, 정복에 정복을 이어갔고, 할 수 있을 때마다 손수 군대의 지휘를 맡아 전설적인 갈 마라즈와 그의 그리폰 동료인 데스클로를 데려갔습니다. 제국력 2502, 노르두인 전투(Battle of Norduin)에서 라익스가드 기사들(Reiksguard Knights)을 이끌고 브레토니아(Bretonnia)의 기사들에게 맞서 결정적인 돌격을 이끈 것도 카를 프란츠였습니다. 유명한 피의 벌판(Field of Blood)에서 와아아아아! 스플린리파(Waaagh! Spleenrippa)의 우레와 같은 돌격에 맞서 제국의 전열을 유지시킨 것도 황제 자신의 영웅적인 용기였습니다. 야만인 모르칼-하이(Morkhal-hai the Savage)의 동쪽 무리에 맞선 전쟁에서도, 그는 직접 적 군대의 심장부까지 그레이트소드(Greatsword) 연대를 이끌고 들어가 강력한 전쟁망치를 단 한 번 휘두른 것으로, 카오스 대전사(Chaos Champion)의 두개골을 박살냈습니다.


카를 프란츠가 그의 시대에 가장 위대한 장군들 중 하나라는 점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을 갈가리 찢은 것들과 맞서는 전투의 최전선에 섰고, 책무감은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황제는 그의 충직한 동료인 데스클로를 종종 타고 전투에 나서는데, 이 그리폰은 알이었을 때부터 그가 직접 길렀으며, 고귀하고 장엄한 야수로 지금까지 있었던 제국 그리폰 중에서 가장 막강하다고 명성이 높습니다. 이 그리폰과 황제 사이의 강력한 유대감은 수많은 전투와 여러 모험을 통해서 다져졌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제국은 힘과 영향력을 키워나갔고, 카를 프란츠는 그의 신민들과 평민들의 복지를 개선시킬 중대 계획들에 임했습니다. 라익스마샬 쿠르트 헬보르그는 황제의 뜻을 의심없이 수행하여, 폭군 브리아스쿠스(Breaskus)의 오우거(Ogre) 도적단과, 부러진 이빨(Broken Tooth) 부족의 그린스킨(Greenskin) 약탈자들과 대 스케이븐 전쟁(the Great Skaven Wars) 중에 있었던 스케이븐살해자 만드레드(Mandred Skavenslayer)의 유명한 승전의 장소였던 울부짖는 언덕(Howling Hills)을 더럽힌 스케이븐과 맞선 전투에서 제국군을 이끌었습니다.


제국력 2519년에 황제는 아벌란트(Averland)의 선제후,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의 요청에 따라 그의 군대를 그린스킨 침공의 맹습으로부터 지원하기 위하여 거병했습니다. 검은 불꽃 협곡의 기슭을 정찰하는 드워프 레인저(Dwarf rangers)들은 제후에게 그린스킨 군대가 서쪽의 세상의 끝 산맥(the Worlds Edge Mountains) 주변에서 오고 있으며, 아벌란트로 곧장 향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아벌란트의 군대는 저렇게 거대한 군세와 홀로 싸우기에는 너무 형편없는 훈련과 장비로 무장했기에, 상황은 이색적이고도 자존심 강한 선제후로 하여금 황제의 원조를 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군대를 서쪽으로 이끌고, 카를 프란츠는 선제후를 도와 그린스킨들이 아벌란트인(Averlander)의 영토에서 날뛰기 전에 괴멸시켰습니다.


그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아벌란트의 미치광이 제후는 황제와 영지의 안정성에 여러 문제를 끼쳤습니다. 터져나온 문제 중에는 다른 선제후와 그들의 통치권에 도전하기, 상상 속의 적들을 향한 정신 나간 원정 지휘,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황제가 유지시키기 위해 그렇게나 공들인 전면평화를 방해하는 것을 포함했습니다. 제국력 2502년의 유명한 하플링(Halfling) 반란의 잔혹한 진압을 떠올리고 또한 그런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가는 것을 우려하여, 카를 프란츠는 자신의 개인 대전사, 루드비히 슈바르츠헬름(Ludwig Schwarzhelm)을 보내어 미치광이 제후를 감시하고 그가 선을 넘지 않도록 했습니다. 슈바르츠헬름이 받은 명령은 간단했습니다. 그는 라이트도르프의 예측불가한 태도가 절대로 제국을 위험에 놓이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카를 프란츠의 강력한 외교적 지도력과 루드비히 슈바르츠헬름의 도움으로,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는 지역 내의 불안한 안정성을 확실히 하도록 통치에 있어 자신을 보조할 새로운 조언자를 임명했습니다.



악명높은 제 3차 검은 불꽃 고갯길 전투


 3차 검은 불꽃 고갯길 전투 [제국력 2519년] Third Battle of Black Fire Pass (2519 IC)


검은 불꽃 고갯길은 우리들의 가장 훌륭함도 보았지만마찬가지로 가장 비참함 역시 보았다. 그 곳의 역사는 우리 백성들의 피로 쓰여있고, 그를 통해 우리는 윤택해졌으나 나는 여전히 우리들이 저 암울하고 끔찍한 곳에 다가가기 위해 무거운 대가를 치루었다고 여긴다.

—루드비히 폰 호스(Ludwig von Hoss), 아벌란트(Averland) 지방의 역사,  14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Marius Leitdorf)가 황제에게 경고를 보낸 시기와, 새로운 그린스킨 와아아아!(Greenskin Waaagh!) 가 검은 불꽃 고갯길에서 쏟아져 나와 아벌란트 지방을 뒤덮을 위협이 도사렸던 때는 같은 해였습니다. 그는 직접 그 부름에 응하여 너무 늦기 전에 저 무리를 대면하기 위해 나아가며,  3차 검은 불꽃 고갯길 전투로 치닫게 됩니다. 제국군은 몰려드는 그린스킨 전사들의 떼거지로부터 검은 불꽃 고갯길의 입구를 막아내기 위해 제 때 당도했습니다.


제국 병사들의 전열이 적들의 접근을 막으며, 제국 포병대의 탄막이 빽빽하게 밀집한 적 무리에 대포알과 포도탄을 쏟아부었습니다. 첫 몇 번의 공세는 고블린들(Goblins)과 얼마 안되는 오크들로 이루어졌습니다만, 미쳐 날뛰는 거인(Giant)의 등장은 곧 제국 전열을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카를 프란츠는 자신의 그리폰(Griffon)에 올라타 직접 저 거대한 괴수와 맞붙었으나 도중에 데스클로(Deathclaw)가 부상당하여 지휘부로 후퇴해야만 했습니다.



검은 불꽃 고갯길 전투 중의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


자신의 그리폰이 알트도르프(Altdorf)의 시설로 되돌아가는 동안, 황제는 전투가 계속 진행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그린스킨들은 마치 절벽에 뛰어드는 파도처럼 제국군의 규율 잡힌 편대에 부딪혔습니다. 수 시간의 치열한 싸움 끝에, 북동쪽에서 떠들석한 소리가 올라왔는데, 거대한 멧돼지에 올라탄 그린스킨 전사들이 난데없이 나타나서 제국 포병대를 뚫어내고 있었습니다. 워로드 보르바드 아이언조우(Warlord Vorbad Ironjaw/무쇠아가리 보르바드)가 이끄는 그린스킨 기병대가 제국 전선의 좌측면을 박살낸 것입니다. 모든 부대들이 새로운 위협에 맞서 진형을 틀다가 쉽사리 궤멸당하고 도살당했습니다. 혼란이 제국군을 타고 퍼져가면서 몇몇 부대는 전열을 이탈해 도망갔습니다. 최전선의 고블린들은 중무장한 오크(Orc) 전사들과 거대한 트롤들(Trolls)의 새로운 공세가 싸움에 끼어들면서 가차없이 짓밟혀 죽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 제국의 전선은 너덜너덜하게 되어, 오직 우측만이 예전의 질서라고 할만한 것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전장의 중앙에는 결연한 그레이트소드의 무리만이 그린스킨의 바다 속에서 홀로 서있었는데, 그들은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의 곁에서 싸웠습니다. 워로드 보르바드는 자신의 거대한 탈것을 그레이트소드 부대 사이로 몰아가, 그들을 마치 인형처럼 던져버리고 제후 그 자신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마리우스는 앞으로 나아가 괴물을 마주쳤고, 돌진하는 야수를 피하면서 그의 룬팽으로 치명적인 호를 그렸습니다. 거대한 멧돼지는 마법 검에 의해 내장을 쏟아내었고 기수는 땅에 굴러떨어졌습니다. 워로드가 제 발로 일어섰을 때 그는 그저 수 초만에 선제후를 굴복시켰습니다. 워로드는 강력한 손아귀로 제후의 목을 그러쥐었고, 발버둥치는 몇 초 뒤에, 제후의 목 졸린 으르렁대는 소리는 뼈 부러진 소름끼치는 소리로 끝나버렸습니다. 그 순간,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는 죽었습니다.


제국의 아름다운 전원지대가 적들에게 유린당하는 것을 막아내기에 다급했던 황제는, 그린스킨 무리를 향헤 마지막 한 번의 공세를 이끌었습니다. 황제는 자신의 군마에 올라타 자신의 라익스가드 기사들(Reiksguard Knights)을 이끌고 거대한 기병 돌격으로 적 전열을 뚫어냈습니다. 황제가 워로드를 마주치자, 보르바드는 달려들었습니다. 카를 프란츠는 그의 공격을 피해냈고 갈 마라즈로 쳐냈습니다. 망치는 그 오크의 어깨를 때렸고, 고통은 오크 워로드를 광포한 분노로 몰아가 카를 프란츠를 야수의 흉포함으로 공격하게 만들었습니다.



보르바드 아이언조우와 맞서는 카를 프란츠 전투의 절정


그 둘이 싸우면서, 그들을 둘러싼 전장은 두 우두머리가 싸우는 것을 보기 위해 멈추면서 곧 잠잠해졌습니다. 비록 황제는 훌륭한 전사였지만, 카를 프란츠는 저렇게나 거대한 상대를 극복해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근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시들어가고, 매 일격은 몸에서 힘을 앗아가고 있었습니다. 끝내 황제는 물러나기 시작해, 결국 한 쪽 무릎을 꿇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광경에 고통의 울부짖음이 제국 군대에서 터져나왔습니다. 승리를 음미하면서 워로드는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 전에 그 순간을 맛보았습니다. 카를 프란츠는 고통에 압도당했지만, 그의 가슴 속에서 그는 계속 나아가기를 바라 마지 않았는데, 그가 이 날 쓰러진다면 제국의 대지는 전화로 유린당하고 백성들은 약탈당하고 죽임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그는 먼 옛날의 지그마(Sigmar)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그의 적수를 헤쳐나갈 힘과 구원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의 조용한 기도는 진실하였고, 묵살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눈이 멀 정도로 빛나는 기운이 황제의 몸 주변에서 어른거렸고 망치가 강렬한 황금 빛으로 빛났습니다. 그에게서 갑자기 모든 고통이 사라졌고, 근육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근력으로 충만했으며 태고의 투지가 그의 가슴 속에서 피어났습니다. 황제가 저 거대한 오크에 다시 맞서기 위해 일어나자, 워로드는 황제의 모습이 털가죽을 입은 거대한 야만전사로 변하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남자는 먼 옛날에도 그랬듯이 산맥 사이로 터져나가는 거대한 전투 함성을 외쳤습니다.


"Unberogens!"


그 소리의 순간에 워로드의 본능은 그의 종족의 혼에 새겨진 기억에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용맹한 야만전사들이 비옥한 평야의 지배를 위해 오크들을 전쟁에서 패배시키고 산맥 너머의 황야로 그들을 몰아냈던 기억 말입니다. 그 시절, 저 인간들은 이 땅을 향한 그린스킨의 지배를 허락치 않았던 바로 저 투사가 이끌었습니다. 그 순간, 그리고 자신의 생에서 처음으로 워로드는 공포의 냉기가 자신을 향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워로드는 아연실색하여 서있었고, 주저함의 찰나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야만전사 왕은 자신의 거대한 전투 망치를 오크의 대가리에 내려쳤고, 우레와 같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짐승을 강타했습니다. 검은 불꽃 고갯길의 사건은 다시금 재현되었고 그린스킨 무리는 워로드가 죽는 광경에 혼란에 빠져 전장에서 달아났습니다. 워로드의 목숨이 그 몸뚱아리에서 빠져나가면서 그는 피 흘리는 눈으로 자신을 완파한 신과 같은 적수가 아닌, 검은색 갑주의 상처입은 인간을 보았습니다. 워로드는 이해하지 못했고, 반항심에 다시금 싸우고자 발톱을 드러내는 헛된 시도를 했지만, 그의 힘은 모조리 사라졌고 그의 목숨이 다하기 도 전에, 그의 팔은 힘없이 떨어졌습니다. 그 날 이후로, 모두가 그 결투의 이야기를 들었고, 카를 프란츠의 이름은 제국 내에서 더욱 커다란 자부심과 함께 천명되었습니다. 다년에 걸쳐 전투에 대한 이야기는 윤색되거 과장되어 갔지만, 모든 이들이 바로 그 날, 지그마께서 직접 그 분의 후손과 함께 싸우셨다는 사실은 언제나 인정합니다.



카를 프란츠의 문장(紋章


성격 (Personality)


카를 프란츠는 올드 월드 사상 가장 걸출한 정치가이자, 예술과 과학의 위대한 후원가였고, 군사적 사안에 있어서는 혁신가이자, 대단한 용기와 강인함을 지닌 용맹한 전사였습니다. 그의 수고를 통해, 제국은 그의 치세 동안 번성했습니다. 제국 공학 대학(Imperial School of Εngineers)은 제국군에게 이로운 새롭고 치명적인 전쟁 병기를 개발해냈고, 마법 대학(the Colleges of Magic)은 힘과 규모에 있어 성장하여 승리에 이은 승리에 있어 제국군을 도왔습니다. 카를 프란츠는 가장 훌륭했던 자신의 전임자들보다도 더욱 뛰어난 기량과 인품을 보였고, 올바르고 도덕적인 기반 위에서 강력한 정부를 세우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켜냈습니다.


그의 지도 하에서, 그는 지그마와 울릭 교단이 자신의 환심을 사려는 시도를 교묘하게 다루었습니다. 스티얼란트(Stirland)의 선제후와 탈라벡란트(Talabecland)의 선제후 사이에서 세 황제의 시대(Time of the Three Emperors)로 거슬러 올라가는 분쟁으로 인해 위기가 발생했을 때, 다른 선제후들은 카를 프란츠가 그 사건에서 어느 편을 들어 양 측의 결과를 정할지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허나 황제는 그 중 어떠한 것도 취하지 않았고, 탈라브하임(Talabheim)으로 가서 두 세력 간의 평화 협정을 교섭했습니다.


상당한 인내심이 함께하는 그의 대변인으로써의 재능은, 이번 사안에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만, 두 경쟁자는 결국 그의 조건을 승낙하고 그의 정치적 천재성 덕에 내전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비슷한 갈등들이 카를 프란츠의 개입으로 해결되었으며, 그의 입지는 안심 가고 인상적인 루드비히 슈바르츠헬름(Ludwig Schwarzhelm)의 존재로 보다 견고해졌습니다. 황제의 개인 대전사이자, 황제의 정의의 검인 그의 시선만으로도 다른 선제후들을 본래 그랬던 것보다 훨씬 순응적이고 협조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역사가들과 학자들이 이해하기로는, 카를 프란츠는 합의가 양 당사자가 공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가 보장될 만한 정치적 전술을 활용했다고 합니다. 현재 정치판에 대한 우수한 이해도로, 황제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대신, 상대방이 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주는 식으로 여러 번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영리한 정치적 전술을 활용하면서, 그는 알트도르프의 상인 조합이 제국력 2506년의 유명한 악취 법안 협의(Convention of the Stink Act)에 서명하도록 만들었고, 이는 그들이 무지막지한 벌금과 과도한 요금을 내도록 했는데, 그들이 서명한 것은 보다 깨끗한 알트도르프에 대한 발상을 믿어서가 아니라, 이 합의를 통해 상대방 경쟁자들의 자금을 망쳐버릴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단한 정치적 역량이 드러난 또다른 괄목할 만한 사건은, 호전적인 테오데릭 가우저의 이웃한 호흘란트(Hochland) 지방을 향한 영토 야욕이 카를 프란츠의 명령에 의해 마법 대학의 대종정(Supreme Patriarch), 발타사르 겔트(Balthasar Gelt)의 개입으로 저지되었던 때입니다. 발타사르는 황제의 사절로써 수도이자, 테오데릭 제후의 거주지인 잘첸문트(Salzenmund)로 떠났고, 영토를 확장하려는 선제후의 야심만만한 꿈을 만류하기를 바랬습니다. 발타사르는 비밀스럽게 제후 휘하에 있는 용병들을 위한 금을 납덩어리로 변환시켰습니다. 원정에 자금을 댈 금 없이, 그의 군대는 함께 나아가지 않을 것이기에, 테오데릭으로 하여금 호흘란트의 영토로 향한 그의 주장을 포기해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무슨 사단이 났는지 발견하자, 테오데릭은 그의 강력한 룬팽인 까마귀 급식자(Crow Feeder)를 빼들었고, 자신의 귀중한 금에 저지른 짓거리로 마법사의 목을 쳐버리겠다고 단단히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법사는 노르들란트(Nordland)의 금고를 향한 작업을 마치자 마자 자신의 페가수스(Pegasus)를 타고 노르들란트의 수도에서 잽싸게 도망쳤기에, 그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카를 프란츠의 전쟁과 정치에 있어 비견할 데 없는 재능과, 강력한 조언가들과 전사들의 조력으로 황제는, 지그마의 제국을 집어삼켰을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제국을 이끌어왔습니다. 제국의 충직한 방위자들은 과거의 황제들처럼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이제 제국사에서 가장 암울한 시대에, 점점 더 많은 제국의 백성들에게는 투사와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카오스의 무리가 다시 한번 돌아왔고, 에버초즌 아카온(Archaon the Everchosen)은 미덴하임(Middenheim)의 대문을 강타하였습니다.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분쟁에서 황제와 그의 충직한 투사들이 이 세계를 카오스가 잡아먹어버릴, 엔드 타임을 피하기 위해, 방어전을 도울 것입니다.




무구 (Wargear)


막강하고 오랜 역사를 지닌 제국의 황제이기에, 카를 프란츠는 황제의 칭호와 함께 전 올드 월드를 통들어 가장 강력한 마법 무기와 갑주도 수여받았습니다. 황제의 갑주는 그 실력이 견줄 데 없는 드워프 대장장이들이 그를 위해 벼려냈고, 키슬레프의 전투에서 경건한 자, 마그누스(Magnus the Pious)가 걸쳤던 실제 갑옷도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갑주는 검은 그롬릴(Gromril)로 만들어졌으며 화려하게 도금되어 있고 룬들(Runes)과 힘의 상징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황제는 지그마의 지원에 감사의 표시로 고대 드워프 하이 킹, 쿠르간 아이언비어드가 준 무기인 지그마의 망치, 갈 마라즈, 해골분쇄자(Ghal Maraz, the Skullsplitter)로 무장했으며, 이는 고대의 드워프가 자신들의 권세가 절정을 이루었을 시절에 만든 무기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마법 무기입니다. 황제는 은 인장(the Silver Seal)라고 알려진 마법 부여된 부적을 목에 걸고 있습니다. 이 부적은 그의 적수가 내지르는 가장 강력한 공격과 일격을 막아내고 심지어 황제를 향한 마법 주문에도 대응합니다. 이것은 전사 마법사, 프레드릭 폰 타르누스(Warrior Mage Fredrik von Tarnus)가 카오스 대전쟁(Great War against Chaos) 이후 경건한 자, 마그누스를 위해 만든 것입니다.



출처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Elector_Count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Alberich_Haupt-Anderssen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Helmut_Feuerbach

http://es.warhammerfantasy.wikia.com/wiki/Halmut_Feuerbach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Solland



알브레히 하웁트-안델센(Albreich Haupt-Anderssen)은 스티얼란트(Stirland)의 현 선제후입니다.


그는 자신의 굶주리는 인민들을 위한 보다 많은 식량과, 실바니아(Sylvania)의 뱀파이어(Vampires)들과 강령술사들(Necromancers)과의 싸움에의 지원을 약조받고 난 후, 제국력 2502년에 카를 프란츠(Karl Franz)에게 투표했습니다.



정식 명칭으로는 선제후 헬무트 포이어바흐(Helmut Feurbach), 탈라벡란트(Talabecland)의 대공(Grand Duke), 타알(Taal)의 총아, 동부 평야의 후작(Margrave)은 탈라벡란트와 탈라브하임(Talabheim)의 선제후입니다.


탈라벡란트의 선제후는 더러운 성질로 악명이 높으며, 탈라브하임 통치 의회를 운영하는 귀족과 상인 조합, 그리고 여러 신전들로부터 대단한 분노를 그러모으고 있습니다. 그의 명령은 변덕스러운 발상과 엉뚱함에서 비롯되며, 특히나 가혹한 통치방식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형편없는 판단력은 그의 거슬리는 성격과 합쳐져 선제후가 차라리 사라졌으면 하는 사람들의 기나긴 명단을 초래했으며, 정권 전복의 소문에 신빙성을 더합니다. 헬무트에게는 권좌를 물려줄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탈라벡란트의 선제후, 헬무트 포이어바흐는 카오스의 폭풍(Storm of Chaos)이 제국을 휩쓸 때, 할무트는 카를 프란츠의 곁에서 싸울 군대와 함께 행진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마지막 순간에 포이어바흐는 사라졌습니다. 군대 사이에서는 그에 대한 소문이 돌았는데, 비스트맨(Beastmen)에게 먹혔다던가, 카오스의 기운이 그를 쓸어갔다던가, 반역파 장군들의 손에 살해당했다던가, 독살당했다던가 쥐인간(Rat-men)들이 납치했다는 수십가지의 아리송한 소문만 나돌았습니다.



필너 / 콘라트 알드레히(Vilner / Konrad Aldrech)


알드레히는 1110년 경 살해당했으며 후계자 없이 사망했습니다. 그 결과 드락발트(Drakwald) 주는 노르들란트(Nordland)와 미덴란트(Middenland) 사이에서 나뉘어졌습니다. 드락발트의 룬팽(Runefang)은 미덴하임(Middenheim) 울릭(Ulric) 신전의 금고에 놓여있습니다.




졸란트(Solland)는 제국의 최남단 지방이었습니다. 졸란트와 그 선제후 엘드레드(Eldred)는 제국력 1707년 고르바드 아이언클로(Gorbad Ironclaw/쇠발톱 고르바드)가 이끄는 대규모 오크 와아아아!(Waaagh!)가 영지를 공격했을 때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졸란트 룬팽, 원한 청산자(Grudge Settler)는 졸란트의 왕관 전투(the Battle of Solland's Crown)에서 침략자들에게 탈취당했으며, 한참이 지나서야 드워프들과 인간들의 합동 탐험대에 의해서 카오스(Chaos) 야수의 은신처에서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졸란트의 영토는 한때 자신의 이웃이었던 곳의 몰락에 깊은 비통함을 갖고 있는 비센란트(Wissenland)로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졸란트 룬팽은 현재 쿠르트 헬보르그(Kurt Helborg)가 지니고 있습니다.


전 지방의 옛 수도는 파일도르프(Pfeildorf)이며 졸과 라이크 강 상류(the River Sol and the Upper Reik)에 위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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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누엘레 폰 리에브위츠는 권력 다툼 끝에 그녀를 거스른 가신인 브루노 파이프라우허(Bruno Pfeifraucher)백작으로부터 2514, 비센란트(Wissenland)의 권좌에 올랐습니다.


에마누엘레 폰 리에브위츠, 비센란트의 대공녀(Grand Countess), 뉠른(Nuln)의 여제후, 마이센(Meissen)의 공작부인(Duchess)은 비센란트의 현 선제후이며, 카를 프란츠(Karl Franz)가 제위에 오른 시기와 비슷한 때에 자리를 얻었습니다. 현 통치자의 소꿉친구인 그녀는 선제후 직위에 대한 요구권이 있었지만, 그다지 적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프란츠의 환심을 사는 방법으로—누군가는 그녀가 그를 유혹했다고도 합니다—그녀는 제국력 2503년에 여선제후(Elector Countess)의 직위를 얻습니다. 그녀는 통치머리는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바 있습니다. 그녀는 대부분 후미진 곳으로 여기는 지방뿐만 아니라, 중요한 도시를 다스리는 자질구레한 사안보다는 자기 지위의 호화스러움에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그녀는 비센란트의 평민들과 시민들을 질색했으며 자신의 영역 아래 있는 마을과 촌락의 사안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고 파일도르프(Pfeildorf)의 토펜하이머(Toppenheimer) 가문에 더 큰 권력을 건네기만 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황제에게 뉠른과 비센란트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협상 중에 있습니다. 뉠른에 선거권을 부여하고 비센란트에게는 그 선거권을 유지하게 하는 댓가로, 그녀는 황제의 금고에 막대한 차관을 제공할 것입니다. 뉠른을 비센란트로부터 독립시키려는 그녀의 모든 노력은, 여제후 자신이 그 도시를 아끼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도시의 역사와 장엄함, 화려함과 문화, 그리고 깊고 깊은 금고를 사랑합니다. 평민들의 곤고함이 얼마나 절박하건 상관없이, 그녀의 여제후로써의 권좌가 뉠른에 있는 한, 그녀의 안락함과 쾌락은 언제나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알기로는, 토펜하이머 가문은 가혹한 겨울과 음울한 농지를 가질 터입니다. 오직 그녀가 원하는 건 뉠른입니다. 게다가 비센란트의 통치권 대다수는 상인 집단과 하급 귀족들 그리고 종교인들이 모인 의회로 넘어갔고 그녀가 대표이긴 하지만,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그녀의 위치에 퍽 무능하다고 여깁니다. 속담에서는, “여제후의 대가리는 선언문만큼이나 공허하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인민들은 그녀를 사랑합니다. 지금 그녀는 중년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젊었을 적의 미모를 유지하고 있으며, 많은 귀족들이 그녀의 상당한 권력을 조금이나마 얻기를 바라며 그녀의 손을 청합니다.


역주 : 파일도르프는 지금은 망해서 없는 졸란트(Solland) 주의 전 주도, 양모 무역 및 의류 산업의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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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람 헤르트비히는 오스터마르크(Ostermark)선제후였습니다. 그는 신경질적이고 전쟁에 체계적인 접근법을 취했던 것으로 유명한 자였습니다.


볼프람 헤르트비히는 2485, 헤르트비히의 우행(愚行)(Hertwig's Folly)전투에서의 재앙과도 같은 노릇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엔드 타임 (End Times)


엄밀히 알데르펜(Alderfen) 주둔군은 아니었지만, 헤르트비히 백작은 침입이 발생했을 때, 시찰 중이었습니다. 그는 페스탁 크란(Festak Krann)의 손에 죽음을 맞기 전까지, 전투에서 지휘권을 맡았습니다. 보통이라면, 헤르트비히 백작은 전투 그리폰, 피깃털(Bloodfeather)의 안장에서 싸우지만, 이 야수는 이틀 전 역병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카오스(Chaos)의 세력과의 뒤이은 전투에서, 헤르트비히는 첫 공세의 여느 병사들처럼 용맹하게 싸웠으며, 패배가 닥쳤을 때 근위대에 의해서 끌려나갔습니다. 선제후는 첫 지원군이 도달하자 지휘권을 잡았으며 슬픔의 눈물자욱이 그의 뺨에 남았으며 죽음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헤르트비히는 검사할버디어 전열이 버티기에는 너무 얇다는 점을 알았고, 이들이 압도당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으나, 개의치 않았습니다. 종말을 말하는 자들이 이르듯이 진실로 엔드 타임이 세상에 임한다면, 헤르트비히는 손에 검을 쥐고, 저항을 토해내며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렇듯, 카오스의 무리가 언덕의 아랫턱에 도달했을 때, 볼프람 헤르트비히는 자신의 룬팽(Runefang)을 높게 쳐들었고 그의 병사들이 응답했습니다. 그가 지그마(Sigmar)의 이름을 연호하자, 수천의 목소리가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울릭(Ulric)을 향해 외치자, 미덴란트인들(Middenlanders)이 화답하여 포효했습니다. 그리고 헤르트비히가 룬팽을 내리자, 제국의 인간들이 언덕 꼭대기에서 물밀 듯 내려와 죽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달았습니다.


헤르트비히의 탄력이 곧 그를 적 전열 깊숙히 밀어넣었고, 너무나 깊이 들어간 나머지 오직 한 무리의 미덴란트인만이 그와 합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죽고 죽어가는 카오스 전사들이 선제후를 둘러싸고 두텁게 쌓여만 갔는데, 지옥에서 벼려낸 갑주조차도 전설적인 룬팽의 마법이 깃든 칼날을 견디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헤르트비히가 싸우는 장소 가까운 곳에서, 야수 같고 둔중해 보이는 인물이 선제후의 행보를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이 자는 페스탁 크란, 너글(Nurgle)의 총애와 자기 자신의 기량으로 그 정도의 북방인(Northlander) 무리를 이끌었습니다. 헤르트비히에게서 가치있는 적수이며 그의 죽음이 살해자에게 영광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았습니다.


전투의 소음 속에 둘러쌓여 있었기에, 헤르트비히가 처음으로 크란의 접근을 안 것은, 전쟁군주의 녹으로 얽은 도끼로 자기 앞에서 싸우던 두 미덴란트인을 옆으로 쓸어버렸을 때입니다. 크란의 도끼가 곧 닥쳐왔고, 튕겨내기엔 너무 빨랐으며, 헤르트비히는 육중한 날이 갑주를 쪼개고 들어와 자신의 어깨에 박히자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습니다. 불구가 되어버린 팔의 고통을 무시하고 헤르트비히는 공격자를 베어냈지만, 시야는 흐려져갔고 일격은 도끼자루의 나무조각을 날려버린 수준 밖에는 되지 않았습니다. 크란의 도끼가 다시 내려쳐오자, 헤르트비히는 자신의 마지막 힘을 모아 몸을 날려 마지막 일격을 내질렀습니다. 선제후가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는 룬팽의 칼날이 야수의 뱃속을 깊숙히 갈라버리면서 크란의 놀라 고함치는 소리였습니다. 크란의 녹슨 도끼가 두개골을 쪼개버리기 전, 헤르트비히의 입술은 마지막으로 짧은 미소를 지어 움찔거릴 시간은 있었습니다. 그의 적수는 헤르트비히의 몸뚱아리가 땅에 쓰러지고 생명없는 손이 전쟁군주의 내장에 검을 파묻은 채 놔두자, 웃으며 소리질렀습니다. 크란은 여느 때처럼 부상이 치유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상처가 회복되지 못하자 천천히 죽어갔습니다. 헤르트비히의 룬팽은 트롤 조각자(Troll Cleaver)로 알려졌으며, 그것에 부여된 마법은 자신의 이름에 붙은 짐승들에게 그리하였듯, 북방인들의 치료 시도를 손쉽게 좌절시켰습니다.


출처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Elector_Count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Valmir_von_Raukov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서 엎드져 쓰러지는 사이, 노르들란트(Nordland)와 탈라벡란트(Talabecland)가 마지막 일격을 꾸밀 터이다.


—발미르 폰 라우코프, 오스틀란트(Ostland)의 선제후


오스틀란트의 본래 통치 세력은 폰 테시닌크(von Tessininck) 가문이었습니다. 할스 폰 테시닌크(Hals von Tessininck)와 그의 아들의 사망 후, 권좌는 폰 라우코프 혈통으로 넘어갔습니다.


정식 직함으로는 선제후 발미르 폰 라우코프, 오스틀란트의 대공, 북방 경계의 후작(Margrave) 그리고 동방의 망치로 알려진 발미르 폰 라우코프는 전쟁광이자 오스틀란트의 현 선제후입니다. 오스틀란트의 선제후들은 위험천만한 트롤 지방(Troll Country)과 북부 황무지가 놓인 제국의 북동부 국경에서 거주합니다. 이곳은 언제나 빈곤한 지방이었고, 상존하는 위험은 강인한 인간 부류를 길러냈습니다.


오스틀란트의 선제후는 발미르 폰 라우코프입니다. 전에 있던 자신의 부친처럼, 그는 일생을 카오스 전쟁무리와 맞서싸우고, 북방(Norse)을 약탈하며, 오크들(Orcs)을 습격했습니다, 키슬레프에서 온 도적들을 급습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후 자신의 영토마저도 완전히 안전한 것이 아닌데, 이는 숲과 산에는 변절자들과 비스트맨(Beastmen), 트롤, 자이언트(Giants) 그리고 수많은 다른 적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발미르 폰 라우코프는 거친 전쟁군주로, 그의 끊임없는 방비는 오랜 세월 동안 제국의 북부 경계를 수호해냈습니다. 발미르는 이바나(Ivana)와 혼인했고 두 아들들이 있는데, 올레그 폰 라우코프(Oleg von Raukov)와 바실리 폰 라우코프(Vassily von Raukov)입니다.


보리스 폰 라우코프 (Boris von Raukov)


보리스 폰 라우코프는 발미르의 여덟번째 아들이며, 정황상 서자입니다. 그는 군 경력을 좇아 오스틀란트를 떠났습니다. 그는 현재 원한을 부르는 자(Grudgebringers)와 같이 싸운, 뉠른 도시에 본부를 둔 용병 연대, 4번 뉠른 할버디어(4th Nuln Halberdiers)의 대장입니다.


무구 (Wargear)


두뇌 상해자(룬팽)(Brain Wounder (Runefang)) – 제국의 모든 선제후들에게 주어진 마법 검.


드래곤보우(Dragonbow) – 오스틀란트의 드래곤보우에는 사용자에게 막강한 근력을 부여하는 강력한 룬이 새겨져 있습니다. 화살에는 드래곤 뿔로 촉이 달려있으며 마법으로 목표의 심장을 향해 나아간다고 합니다.


출처 :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Theodoric_Gausser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Elector_Count



보다 공식적으로는 선제후 테오데릭 가우저, 노르들란트의 대남작(Grand Baron), 잘첸문트(Salzenmund)의 대공, 라우렐로른(Laurelorn)의 군주, 마리엔부르크(Marienburg) 공작 그리고 노스카인(Norscan)의 공포인 테오데릭 가우저는 노르들란트의 현 선제후이며 자기 백성들의 강인함과 호전적인 천성을 깊숙히 끌어안고 있는 무시무시한 전사 군주입니다. 선제후로써 그는 마리엔부르크 대공의 작위도 갖고 있지만, 그는 그 도시에의 출입이 죽음으로써 금지받고 있습니다.


테오데릭 가우저는 자신의 작위 외에도 마리엔부르크의 대공임을 주장합니다. 그 점에 의문을 갖는 저 도시는 만일 그가 방벽 안으로 들어올 시 처형될 것이라는 내용의 칙령을 선포했습니다.


가우저는 호전적인 자로, 이웃한 호흘란트(Hochland) 지방의 영토에 대한 야욕이 자칫 내전으로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카를 프란츠(Karl Franz) 황제의 명으로, 황금의 마법사 발타사르 겔트(Balthasar Gelt)는 테오데릭 가우저의 성 안 금고에 쌓여있던 금을 모조리 납덩어리로 바꾸어서, 선제후로 하여금 그가 고용한 용병들에게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게 만들어 그를 제지했습니다.


무구 (Wargear)


가우저는 대개 전신갑주와 머리에 금빛 투구를 쓰고 그리폰(Griffon)의 등 뒤에 타고 전투에 나섭니다. 노르들란트의 선제후로써 그가 선택한 무기는 룬팽 까마귀 포식자”(Crow Feeder) 입니다.


출처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Elector_Count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Aldebrad_Ludenhof



젊은이, 언젠가 자네는 호흘란트의 선제후로써 자네 부친을 계승하기에, 우리의 광대한 영토의 군사적, 정치적 구조를 배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네. 이곳 헤르기그(Hergig)의 궁정에서, 자네는 호흘란트 지방을 다스릴테지. 이 지도에서 국경을 볼 수 있을걸세. 언제나 명심하게, 자네의 첫 번째 의무는 백성들을 다스리고 지키는 것이야. 게다가 자네는 이미 자네의 정식 직함이 선제후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이미 알고 있어, 더욱 거대한 책무와 함께 하는 직함 말일세. 자네는 제국 의회에 참석할거야, 다른 열 넷의 선제후들과 함께.


— 콘라트 루덴호프(Konrad Ludenhof), 알데브란트 루덴호프의 아들에게 지도교사 뉠른의 에라스무스(Erasmus of Nuln)의 훈시에서 발췌.


정식 직함으로는, 선제후 알데브란트 루덴호프, 호흘란트(Hochland)의 대남작(Grand Baron), 탈라벡(Talabec) 유역의 치안관(Marshal), 성지들의 수호자, 헤르기그의 남작인 알데브란트 루덴호프는 호흘란트의 현 선제후입니다. 비록 호흘란트가 특별히 크거나 중요한 지방은 아니지만, 이곳의 선제후는 제국의 가장 용맹한 지도자 중 하나입니다. 알데브란트는 키가 매우 크고 호리호리하지만 완력이 엄청나고 단련되어 있어, 전투에서 더 크고 육중한 상대와 겨룰 수 있습니다. 그는 사냥, 특히 매사냥에 대해서 끊임없는 열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알데브란트의 궁은 수도 헤르기그의 바깥 쪽에 위치해있어, 주 사냥터에 둘려쌓여 있습니다. 그는 엄청난 수의 매 새장을 차지하는 자신의 사냥용 새 소장물에 대해 특히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종종 궁 안에 풀어놓기도 하기에, 모든 방 안에는 횃대에 걸터앉은 맹금류가 적어도 한 마리는 있습니다. 이 제후는 전투에 나설 때도 자신의 팔에 매를 한 마리 얹고 갑니다. 알데브란트에게는 제국 작위를 이을 것이 확실한 후계자인 아들, 콘라트 루덴호프가 있으며 현재 뉠른의 에라스무스 지도 아래에 있습니다.


2516, 알데브란트 루덴호프의 아들은 지독한 질병에 걸리게 되었고 흉물스러운 카오스(Chaos) 돌연변이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출처 :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Boris_Todbringer



내 반평생과 한 눈을 통째로 바쳐 이것들과 싸워왔다. 흉폭하고 강력한 짐승들이나, 더 무서운 건 몇몇 놈들은 야수의 교활함과 카오스(Chaos)에서 생겨난 야만성에다가 인간의 지성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허나 가장 지독한 것은 저들 중 몇몇이 인간이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떤 겉보기에 평범하고 신실한 인간이 변장한 돌연변이였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실이다. 그들은 비스트맨의 첩자로 행동하고 그래, 때로는 암살자로도 그러하지.


—보리스 토드브링어, 미덴하임(Midenheim)의 선제후


정식 직함으로는, 선제후 보리스 토드브링어, 미덴하임의 백작(Graf), 미덴란트(Middenland)의 대공(Grand Duke), 카로부르크(Carroburg)의 군주(Prince), 드락발트(Drakwald)의 수호자, 중간 산맥(the Middle Mountains)의 관리자, 울릭(Ulric)의 총아로 알려진 보리스 토드브링어는 미덴란트의 선제후입니다. 보리스 백작은 대단한 전사이자 탁월한 정치가이며, 수십년간 자신의 가문인 토드브링어 가의 수장이었습니다. 보리스 백작의 말년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속삭여대는 소문으로 인해 근심으로 짓눌렸습니다. 그의 드락발트 숲 비스트맨과의 전투, 특히 그가 눈을 취했고 한 해가 지나, 그 댓가로 자신의 오른쪽 눈을 잃게 한 사악한 짐승, 카즈라크(Khazrak)와의 전투는 끝없는 투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소문이 사실이라면, 보리스 토드브링어는 실로 심지가 굳은 자인데, 겉보기로도 그는 언제나 혈기왕성한 채이고, 무시무시한 전사이며 지도자입니다. 그는 자주 미덴란트 군대를 직접 이끌고, 자신의 룬팽(Runefang)으로 적들을 쳐부수며, 자신의 군사들을 승리로 이끕니다. 부친의 서거 이후, 카를 프란츠(Karl Franz)가 황제로 선출되자, 오직 미덴란트의 보리스 토드브링어만이 그에 맞섰습니다. 울릭의 고위 사제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카를 프란츠의 제후들 중에서 가장 충성되고 힘이 넘치는 자임을 증명했습니다.



토드브링어 가문 계보


역사 (History)


대 신전의 불꽃이 남아있는 한, 미덴하임과 미덴란트는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


—보리스 토드브링어, 미덴하임의 선제후


보리스 토드브링어는 상당히 일찍 결혼했으며, 그의 첫 부인, 마리아 폰 리히트호펜(Maria von Richthofen)은 보리스가 자기 작위의 후계자로 명한 스테판을 낳고 한 해 뒤에 죽었습니다. 보리스는 시녀에게서 얻은 또다른 아들, 하인리히(Heinrich)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간에는 하인리히가 백작과 마리아의 혼인 전날 밤에 잉태되었다는 불확실한 소문이 있습니다.


스테판 남작은 출생 하루 뒤에 백작 자신의 후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자라자 침흘리고 중풍에 걸린 장애인이며, 극도의 폭력성과 광증에 시달린다는 사실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틸레아인(Tilean) 의사 루이지 파바로티가 스테판의 전속 의사로 임명되면서 호전되었습니다. 스테판과는 완전히 반대로, 백작의 장남인 하인리히 토드브링어 남작은 상당한 지적 재능과 육체적 기량을 타고났습니다. 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생아로써의 출생은 부친의 미덴하임 백작직을 물려받기에는 부적합했습니다.


47의 나이에 백작은 또 다른 부인, 노르들란트(Nordland)의 남작의 여식, 아니카-엘리제 닉세(Anika-Elise Nikse)를 맞이했습니다. 불행히도, 혼인 생활 중에 후사는 없었으며, 아니카-엘리제는 결혼하고 10년 뒤에 죽습니다. 백작은 아이를 하나 더 얻게 되는데, 두 번째 혼인에 앞서 시녀에게서 낳은 카타리나(Katarina)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 백작은 만사에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작의 비통함은 서서히 우울감에서 사실상의 정신박약으로 악화되어 갔기에, 그는 대다수의 사안에 대해서는 그의 조언자들이 자신을 대신하도록 합니다.


그의 퇴세를 배로 비극으로 만드는 것은, 전 시녀와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나온 장남과, 첫 아내로부터 나온 차남인 그의 두 아들들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후자는 태어난 바로 그 날에 자기 부친 작위의 후계자로 임명된스테판 토드브링어 남작(보리스의 첫 부인은 그를 낳다가 죽었습니다)입니다. 이는 스테판이 자라면서 가엾은 병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가장 불행한 실수였음이 드러났습니다. 중풍에 걸리고 정신박약에다가, 침흘리는 지진아인 그를 돌보는 것을 배로 어렵고 까다롭게 하는 건, 극도의 불안 증세와 수시로 터져 나오는 자해 시도와 타인을 향한 폭력 때문이었습니다.


장남 하인리히 토드브링어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상당한 지적 재능과 육체적 기량이 두드러지는 자였습니다. 몇 해 동안, 하인리히는 자신의 부친에게서 외교 임무를 맡았지만, 이 재능있는 자는 보리스 백작의 쇠약함으로 인해 절망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는 작위의 후계자가 아닌데다가 자신의 위에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쇠락한 친족이 둘이나 놓여있기에, 자신은 백작의 직무를 맡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이 상황을 구제하기 위한 절박한 시도이자 스테판의 형편을 맞추기 위해, 유명한 미라글리아노인(Miraglianese) 의사를 도시로 들여왔습니다. 그곳에 있는 지 몇 주 되지도 않았지만, 루이지 파바로티는 그의 무지막지한 식욕에서 비롯된 도시 전체에 퍼진 악명을 얻었고, 틸레아 출생에도 불구하고 의사 양반”(“Herr Doktor")으로 널리 알려집니다. 조련사와도 같은 이 자는 스테판 남자의 증세를 눈에 띄게 안정시킵니다. 루이지가 주변에 있을 때면 확실히, 스테판은 두드러지게 유순했습니다. 하지만 떨어대는 스테판이 자기 아버지의 역할을 맡을 위치에 있을 거란 희망은 거의 없을지라도, 보리스 백작은 가령 하인리히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승계의 칙령을 뒤바꿀 의향을 내비추지는 않았습니다.


스테판과 하인리히는 사교도들의 음모의 결과로 인해 몇 해 뒤에 죽고 맙니다. 이로 인해, 올드 월드(Old World) 전역의 젊은 귀족들 태반에게서, 비록 공식적으로 직함을 얻진 못했지만, 미덴하임인들에게 공주라고 불리는 보리스의 여식과의 혼인 승낙을 받기 위한 엄청난 외교 활동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그 어떠한 구혼자도 적절하다고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개요 (Overview)


밤 중에 장부 속 비수가 아닌, 내 손의 굳건한 강철과 튼튼한 떡갈나무로 맞설 적을 데려오라


—보리스 토드브링어, 미덴하임의 선제후


보리스 토드브링어 백작과 토드브링어 가문은 가장 돋보이는 계보를 지닌 가문입니다. 그들은 운문과 산문 그리고 노래 속에서 여전히 기억되는 시절, 실질적인 제국의 구세주인 경건한 자, 마그누스(Magnus the Pious) 황제의 형제, 군타르 폰 빌트호펜(Gunthar von Bildhofen)의 후예이며 폰 빌트호펜 가문의 먼 친족들입니다. 보리스 백작은 자신의 선조들이 발전시킨 반민주적인(semi-democratic) 정부의 맥락 속에서 통치해왔습니다. 엄밀히 보면, 그가 도시 내의 모든 법안을 제정하지만, 그는 수많은 조언가들을 두고 있으며 이익 집단들 (상인, 장인, 종교지도자 및 기타)은 다양한 공민위원회(Bürgerlich Komissionen) (시 의회)를 통해서, 어떤 경우에는 직접 그에게 제청과 진정(陳情)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치에 대한 백작의 개화된 접근법은 지금 중요한 결과 하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덴하임은 어쩌면, 놀랍게도 다소 자유로운 장소라는 점입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관용적인 편이며, 심지어는 신용이 가는 자들이고 도시의 일부가 빈곤할지언정 추잡하다고는 할 수 없어 미덴하임은 많은 제국 도시들 중에서도 살기 좋은 곳입니다. 요새 도시에서 이러한 자유주의란 다소 희한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분명 토드브링어 가문이 여러 세월에 걸쳐 입법과 법을 집행할 때, 백성들에게 귀기울이기를 힘쓴 사실 덕택입니다. 수많은 학식있는 사람들과 그럼에도 종족들간에 상대적으로 서로 조화로운 관계 역시 미덴하임의 자유주의를 영속시킵니다.


제국과의 관계 (Relations with the Empire)


카를 프란츠 1세가 알트도르프(Altdorf)에 있는 자신의 권좌에서 제국 전체에 절대적인 지배권을 유지한다고는 하지만, 다른 선제후들과 마찬가지로 보리스 백작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권력의 한계는 오직 주변의 선제후들이 내버려두는 지점까지 입니다. 물론 황제의 선언 하에 전시가 되면 (선제후가 그 대의가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는 가정 하에), 백작은 황제가 명할 군대를 지원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도, 보리스가 전쟁에 나서고 싶어하지 않고, 다른 선제후들이 그에게 떼를 지어 맞서지 않을거라고 (또는 그러지도 못할 거라는) 믿을 명확한 이유가 있다면, 황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현재로써, 알트도르프와 미덴하임 궁정 사이의 관계는 다소 긴장되어 있습니다. 보리스 백작은 돌연변이 따위는 없다는 최근 황제의 선언이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게다가 그의 고문(Chancellor)에게 저 나이든 멍청이가 드디어 돌아버렸어!”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혀 도를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물론 보리스 백작이 울릭의 신봉자라는 사실이 (비록 이를 내세우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황제를 향한 그의 태도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는 카를 프란츠가 지그마 교단 대학자(the Grand Theogonist of the Cult of Sigmar)의 꼭두각시와 다를 거 없다고 의심합니다. 그렇다면 고위 대의원 베르너 스톨츠(High Capitular Werner Stolz)(미덴하임의 지그마 고위 사제)가 백작의 궁정에서 환영받는 방문객은 못된다는 점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보리스 백작은 노르들란트의 소지방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인구가 드문드문 모인 지역과의 인연은 2368, 브룬힐데 토드브링어(Brunhilde Todbringer)가 루드비히 닉세(Ludwig Nikse)와 혼인한 때로부터 이어졌습니다. 그 때부터, 이 관계는 2457년에 보리스의 부친과 비르깃 닉세(Birgit Nikse)와의 혼인, 2502년에 보리스 자신이 아니카-엘리제 닉세 (현 남작의 여식)를 자신의 둘째 부인으로 맞이하면서 더욱 곤고하게 되었습니다. 노르들란트는 미덴하임에게 자신의 안보와 남쪽 그리고 서쪽의 교역관계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으며 그 답례로 우드 엘프(Wood Elf)-인간 사이 교역의 주 공급처와 정치적 지원 그리고 때때로 궁병 연대를 지원합니다.


직속 조언자 (Personal Advisors)


미덴하임 하루하루의 운영을 보조하기 위해, 지난 백작들은 종종 온갖 조언자들에게 둘러쌓였습니다. 보리스 백작도 예외는 아닙니다. 궁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무처는 바로 고문(“안됩니다!”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과 보리스가 내리는 결정의 정치적 파문에 대해 백작에게 조언하는 대법관(the Law Lords)(세 명의 매우 진지하고 거만한 전문가)이 있는 곳입니다. 마법사와 연금술사 길드(The Wizards and Alchemists Guild)의 고위 마법사와 상비군과 도시 경비대를 책임지는 세 명의 미덴마샬(Midden Marshalls)이 기타 조언자에 포함됩니다.


종교 (Religion)


보리스 백작은 울릭 숭배자인데, 그의 조상인 군타르가 경건한 자, 마그누스의 서거 이후 황제가 되지 못한 것에 지그마 교단의 대학자 결코 적지 않은 책임이 있어서만은 아닙니다. 반면 미덴하임에 있는 지그마 교단 사제장 베르터 스톨츠는 현 대학자 및 탈라브하임(Talabheim)과 뉠른(Nuln)의 지그마 교단 대봉독자(Arch Lector)와 친밀한 관계입니다(모두가 선출권자입니다). 이 셋은 적어도 한번은 매년 스톨츠를 방문하기로 약조했고, 교단들 간의 긴장감은 겉보기에 격식있고 차분한 표면 아래에서도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막강한 본거지인 이곳에서도 스톨츠는 아르-울릭(Ar-Ulric)과 그의 교단을 속여넘길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무구 (Wargear)


제국의 선제후로써 보리스는 자신이라는 사람의 비중에 걸맞는 강력한 마법 도구와 갑주 그리고 무기를 고를 수 있습니다. 그는 드워프가 주조한 전신갑주와 방패를 듭니다. 그는 갑주 군마를 타고 미치광이 알라릭(Alaric the Mad)이 지그마를 위해 만든 고대의 마법 룬팽 중 하나로 무장합니다. 또한 이 선제후는 사슬에 걸린 울릭의 부적을 목에 겁니다. 이는 미덴란트 제후의 고대 가보이며, 마법적인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상처를 치료합니다.



출처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Elector_Count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Marius_Leitdorf



지그마시여 보우하소서, 하지만 난 주변의 선제후들보단 드워프들에게 되려 믿음이 가더란 말이지


—아펠란트의 제후,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Count Marius Leitdorf of Averland)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는 제국에서 가장 위대한 전사이자, 그 자신의 광기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는 2520년 제 3차 검은 불꽃 고갯길 전투(the Third Battle of Black Fire Pass)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로 세상을 떠났기에, 현재 아펠란트의 선제후 자리를 두고서 다툼이 있습니다.


아펠란트의 미치광이 제후로 가장 악명이 드높은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는 지금은 사망한, 아펠란트의 선제후이며 미쳤거나, 제국의 군대에서 가장 용맹한 장군으로 여겨졌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숲과 벌떼 그리고 반쯤 상상에서 나온 물고기인간과 전쟁을 벌였다곤 못할 것이기에,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가 미치광이 제후로 알려진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리우스를 그의 기이하고 이색적인 천성, 가령 한바탕 분노의 고함을 지르거나, 우울감에 시달릴 때, 그리고 궁정에서의 변덕스러운 행동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가 다른 조언자에게만큼, 자신의 군마, 데이지 쿠르트 폰 헬보링 2(Daisy Kurt von Helboring II)에게 조언을 구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실은, 귀족가의 부인들과 여식들에게 행한 충격적인 행동과 불한당 같은 불손함은 다른 제후들이 자신의 궁정으로 그를 환영할 일도 거의 없게 만들었습니다. 라이트도르프의 가장 통렬한 비난 중 하나는 쿠르트 헬보르그(Kurt Helborg)에게였는데, 미치광이 제후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를 형편없는 콧수염을 가졌고, 그보다 더 형편없는 치아 위생, 그리고 트롤(Troll)과 견줄만한 끔찍한 유머감각을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마지막 부분에서만큼은, 그 판단은 맞았습니다만, 이때부터 이 둘 사이의 반목은 가히 전설적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그의 태도의독특함과 의복의 기이함에서 비롯된 라이트도르프의 명성이 그에게 지독한 손해를 끼칠지언정, 그는 예리한 판단력을 지녔습니다. 그는 정말로 재주가 뛰어난 시인이자 몇몇 관습의 고안자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라이트도르프는 특출난 검사이자 상당한 재주와 솜씨로 전선에서 군대를 이끄는 군사 전술가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몇몇의 대단한 승전은 그의 광적인 용맹과 묘한 통찰력 덕분이기도 했으며, 카를 프란츠(Karl Franz)는 라이트도르프를 자신의 가장 신뢰할만한 동맹으로 여겼습니다.


역사 (History)


마리우스 라이트도르프는 이른 치세기에 카를 프란츠에게 오랫동안 문제를 끼쳐왔습니다. 수 년간 그는 다른 제후들에게 도전했고, 상상의 적들을 쫓아 불필요한 군사 원정을 이끌었으며, 주변에 불안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제국력 2502년의 악명높은 하플링(Halfling) 반란의 무자비한 진압 이후로, 카를 프란츠는 자신의 우중충한 대전사인 루드비히 슈바르츠헬름(Ludwig Schwarzhelm)을 파견해 괴짜 선제후와 견고한 협상을 맺고 오라고 했습니다.


음울한 슈바르츠헬름이 받은 명령은 단순했습니다. 그는 라이트도르프의 악명높도록 예측불가한 행동이 더 이상 제국을 위험에 빠뜨리지 못하도록 확실히 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대전사를 통한 카를 프란츠, 자신의 명확한 지시로, 마리우스는 자신의 가장 지나친 과도함을 누그러뜨릴 새 조언자들을 임명했고, 황제는 괴짜 제후에게 호감을 가졌으며, 그를 제국의 용맹하고도 정신나간 전사로 보았습니다.


미치광이 제후의 죽음 (The Death of the Mad Count)


2520년에, 황제의 충직한 동맹으로써 습곡에 돌아온 라이트도르프는 카를 프란츠에게 전언을 보내어, 그린스킨 전사들의 대규모 무리가 다시금 검은 불꽃 고갯길로 진군하고 있으며, 아펠란트의 지방군만으로는 저들을 몰아내기에 역부족임을 알렸습니다. 카를 프란츠는 막강한 스팀 탱크(Steam Tanks)의 세 대가 뒤따르는 라이클란트(Reikland)와 알트도르프(Altdorf) 도시에서 총동원한 군사력으로 답했습니다. 그러한 군세를 휘하에 두고서, 황제는 라이트도르프의 포위된 군대를 지원했고 오크(Orcs)의 물결을 막아내었습니다.


하지만, 합쳐낸 군세에도 불구하고 검은 불꽃 고갯길로 향해 다가왔던 그린스킨 군단은, 마치 2,500여년전 지그마 헬든해머(Sigmar Heldenhammer)의 시기만큼이나 절망적으로 거대했습니다. 너무도 결말이 뻔한 전투 중에서, 미치광이 제후와 그의 아펠란트인 그레이트소드(Averlander Greatswords) 편대는 그린스킨 전사들의 바다에 맞서는 섬처럼 버티고 섰습니다. 모든 희망을 등진 채, 미치광이 제후는 오크 워보스(Orc Warboss)와 싸웠고, 패배했으며 생명잃은 몸뚱아리는 대지에 내쳐졌습니다. 카를 프란츠의 분투로 전투는 이겼을지라도, 아펠란트의 미치광이 제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무장 (Wargear)


원천의 파멸 (Mother's Ruin) 아펠란트의 선제후로써, 마리우스는 자신의 막강한 룬팽을 휘두릅니다. 원천의 파멸와 긴 단검을 같이 쥔 그는, 숙련된 검사입니다.


출처 : http://warhammerfantasy.wikia.com/wiki/Elector_Count


선제후는 제국에서 가장 높은 계층의 귀족이며, 황제 폐하 당신과 어쩌면 지그마(Sigmar)와 울릭(Ulric) 교회의 고위 사제들에 다음 가는 자들입니다. 이 직위 자체는 제국의 여명기에, 지그마 헬든해머(Sigmar Heldenhammer)에게 충성을 맹세한 부족 족장들의 지위에서 내려져 온 것입니다.


이 직함은 대개 세습직이고, 부친으로부터 자식에게 물려집니다. 하지만 선제후가 무능하거나, 카오스 신들(Chaos Gods)을 숭배하거나 다른 형태의 이단 행위가 적발될 경우, 그의 직위는 박탈되어 보다 적합한 귀족에게 주어질 수 있습니다.


선제후들은, 그들의 이름에서 나타나듯, 신임 황제를 선출할 선거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황제직이 바로 선제후들 중 한 명에게서 나옵니다.



역사(History)


시초 (The Beginning)


선제후의 직위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그마와 제국의 설립을 이끌어낸 원동력이 되는 이야기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인류의 구주시요, 신이신 지그마는 라이크 강 유역(Reik Basin)의 부족들을 분열시킨 사소한 갈등에 끝을 고하고, 자신의 신민들을 영광스러운 용맹의 시기로 이끌게 한 특별하고도 강력한 투지를 지녔다고 합니다. 신출내기에 불과한 15세의 나이에, 지그마는 그의 백성들을 멸하려던 더러운 족속들과 맞서 싸웠고, 그린스킨(Greenskin) 워로드에게서 덕망 높은 왕인 쿠르간 아이언비어드(Kurgan Ironbeard)를 구했을 때, 드워프 제국과 영원한 우정을 맺고, 그리하여 전설의 망치이자 훌륭한 영토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경애받는 제국의 칭송받고 거룩한 상징인, 갈 마라즈(Ghal Maraz)를 받게 됩니다.



뒤이은 해에 지그마의 부친이신 위대한 왕, 비요른(Bjorn)은 카오스를 숭배하는 야만적인 노르시(Norsii)와의 전투에서 쓰러지고 맙니다만, 이는 오히려 지그마께서 부족들의 중심을 서로 이을 수 있는, 깨지지 않는 연대를 형성하고 친족의식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위대한 군기 아래 사람들을 모으고, 그에게 맞설 정도로 어리석은 자들을 내쫓고 복속시킨 후에, 지그마는 부족들을 모아, 하나로 통일하고 자신의 제국을 공격하는 수많은 위협들을 몰아냈습니다. 사상 가장 거대했던 그린스킨의 유입과, 제국을 거의 쪼갤 뻔 했던 종말과도 같았던 노르시 침공도 포함해서 입니다.


지그마의 통치는 50년간 올바르고, 공평했으며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아르-울릭(Ar-Ulric)의 대관 50주년의 해에, 지그마는 격식도 축하도 없이 제국을 떠났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백성들에게 이 말을 남기고 동방을 향해 떠났습니다.


나의 일은 이제 끝났다. 제국은 번영하고 하나되어 있으며, 그대들의 훌륭한 도움과 함께라면 앞으로도 그리하리라. 허나 끝을 보지 못한 일이 있다. 마무리 짓지 못한 과업이니, 나는 갈 마라즈를 만든 이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처음이자 가장 위대한 황제는 자신의 왕관을 탁자에 두고, 자신의 거대한 망치를 챙겼습니다. 자신의 왕국 대문으로부터 미지의 운명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의 여정 이후 채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군주께서는 죽지 않은 대신, 신격으로 승천하시어 필멸의 근원으로부터 태어난 신이 되었고 당신의 제국이 건재하는 한, 그 신민들을 지켜주실 운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딜레마 (A Dilemma) 


지그마께서 후사를 남기지 않으셨기에, 누가 그를 대신할 것인지에 대한 커다란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지그마께서 이룩하셨던 모든 위업들을 무너뜨리고 되돌려버릴 부족 간의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중대한 상황은, 족장들이 자신들 중 하나가 제국을 이끌기로 결정하면서 마침내 해소되었습니다. 지그마께서는 언제나 신민들의 자주적이고 불 같은 기백을 기억하고 소중히 여겼기에, 폭압보다는 언제나 부족들을 형제애로 하나되도록 노력했으며, 제국을 아우르는 사안에 대해서만 몸소 나섰습니다. 지그마께서는 그 누구도 혼자서는 제국을 통치할 수도, 통치해서도 안된다고 선포하셨고, 선제후의 편제 역시 이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각각의 왕이 자신의 부족을 다스리는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각각의 선제후가 자신의 영지를 다스리는 방식은 각자의 사안이었습니다. 선출된 황제로 등극한 자는 자신의 사망 또는 퇴위 이후에는 자신의 후계자가 아닌 다른 계승자의 이마에 왕관을 씌운다는 동지들의 인내심 하에서만, 거대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비통해했던 지그마의 동지들은 그리하여, 헤드리히 1(Hedrich I)를 후임으로 세웠고, 그의 때에 미치광이 알라릭(Alaric the Mad)이 남아있는 룬팽들(Runefangs)을 건네주었습니다. 지그마 이후 첫번째 천년기에 대해서는 역사에 거의 기록되지 않은지라, 다른 종족들의 기록이 오히려 제국 자체의 기록에서보다 더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선제후 체제는 계속되었으며, 제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들에서부터 가장 흉악한 악당들을 내보냈다고 합니다.



선제후들의 봉기 (The Rise of the Electors)


명성이 드높은, 스케이븐학살자 만드레드(Mandred Skavenslayer) 황제가 제국력 1152년에 암살당하던 때, 선제후들은 계승자에 동의하지 않았고 한동안 체제는 무너졌습니다. 세 지방이 자신의 제후야말로 진정한 황제임을 선포했고, 그리하여 제국을 거의 찢어놓은 파멸적인 내전이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는 훗날 역사가들에게 세 황제의 시대(the Age of Three Emperors)라고 알려집니다. 제국력 1979년에, 선제후들은 한 명의 통치자로 합의를 보았지만, 그는 마리엔부르크(Marienburg)의 신생아 마그리타였으며, 지그마의 대학자(Grand Theogonist)가 그 선출을 탄핵했습니다. 그러자 선제후 체제는 완전히 붕괴하였고, 향후 세 세기 동안, 각 지방은 완전히 분단되었습니다. 통합을 이룰 황제가 없기에, 제후들은 자신의 안위만을 도모했으며 주변의 도움을 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제국의 설립 근간이었던 형제애 정신이 모조리 잊혀지는 듯 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상인 부르고마이스터들이 처음으로 출세가도를 달렸는데, 머나먼 친족들에게 도움을 구하지도 못하는 귀족들의 무능함과 분열의 시기에 귀족가의 권세는 시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선제후를 포함한 귀족들은 가문과 정치적 영향력을 동원하기보단, 자신의 영지에서, 상인들과 대금업자들과 부유하지만 천출인 자들에게서 도움을 구해야 했습니다. 단순히 군대를 일으키거나, 비스트맨(Beastmen), 그린스킨, 그리고 노스카(Norsca)와 다른 곳에서 건너오는 카오스를 숭배하는 약탈자들의 끊임없는 습격에서 영지를 지키기 위해 대중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야 할 필요마저도 부르고마이스터들에게의 양보와 사소한 직함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쿠르간(Kurgan) 전쟁군주 아사바르 쿨(Asavar Kul)과 그의 노스카인 동맹들에게, 제국의 분열은 정복에 알맞은 시기였습니다. 피에 굶주린 북방의 광전사들과 흉폭한 쿠르간 기병들의 연합 세력은 키슬레프(Kislev)로 물밀 듯 몰려와 왕국의 대부분을 휩쓸었으며, 게걸스러운 무리가 곧 제국으로 쏟아질 것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사람들은 지그마에게 북쪽의 진노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줄 이를 찾아 절박하게 부르짖었습니다.


그 영웅은 경건한 자, 마그누스. 지그마 그 분에게만 버금가는, 인민들에게 사랑받는 전사 지도자였습니다. 누군가는 그 분이야말로 지그마의 대전사이며, 북방인과 쿠르간을 무찌를 힘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마그누스의 행적을 통해, 대지는 쿨의 군세로부터 구원받았으며, 인민들의 인정은 선제후들로 하여금, 제국을 산산히 쪼개버린 혼돈에 마침내 마무리를 지은 그를 황제의 지위로 등극시키도록 했습니다.


비록 선제후 체제가 무능한 계승자, 이를테면 그의 탐욕 때문에, 셀 수 조차도 없는 부를 댓가로 마리엔부르크 시를 제국으로부터 분리 독립시킨 디이터 4(Dieter IV) 같은 자들을 내놓기도 했지만, 제국은 회복되었고 오늘날까지도 버티고 있습니다. 제국력 2502년에, 선제후들은 라이트폴트(Leitpold)의 아들, 카를 프란츠(Karl Franz)를 황제의 자리로 등극시켰습니다.


책무 (Responsibilities) 


선제후가 되는 것은, 그 직함을 가진 자에게 권력을 가져다줍니다. 자신의 영지에 대한 정치적 통치권을 줄 뿐만 아니라, 재임자의 서거 또는 퇴위로 인해 새로운 황제에 투표하거나 심지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기도 합니다.


직함은 특정한 조건이 따라붙습니다. 충분히 탄탄한 경제와 영지 안에서의 정치적 논쟁을 해결하는 것 외에도, 선제후는 자신의 백성들은 공세로부터 보호해야만 합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제후들은 숙련된 장군들이며, 그렇지 못한 자들은 다른 포부 넘치는 귀족에게 이 직무를 위임합니다.


만일 선제후 자신이 무능한 통치자로 드러나거나, 반역자 또는 이단자임이 드러나면, 그는 자신의 직함과 권세로부터 끌어내려질 수도 있습니다. 대개 이러한 경우는 최후의 수단인데, 그러한 경우 내전의 위협이 언제나 도사리기 떄문입니다.



룬팽 (Runefangs)


선제후들은 각자 룬팽이라고 불리우는 마법 검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검들은 드워프 대장장이인, 미치광이 알라릭이 지그마를 위해서 만들었기에, 무엇이든 그롬릴(Gromril)이나 드래곤의 비늘 같은 육중한 장갑도 손쉽게 잘라낼 수 있는 위력을 가집니다.



역주

: 노르시(Norsii)는 훗날 노스카(Norsca)로 불리운다.


: 부르고마이스터(Burgomeister)는 네덜란드어 Burgemeester의 영역 Burgomaster의 변형으로 보이며 본래는 도시나 마을의 시장, 행정관이지만 여기에서는 부유한 평민 계층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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